연재 2 우리의 자랑 ‘한양도성과 중구의 각자성석’
연재 2 우리의 자랑 ‘한양도성과 중구의 각자성석’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18.04.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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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중구는 한양 천도(1394년)이래로 서울 속의 서울,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수많은 문화유산으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자랑스러운 도시이다.
한양도성은 단순한 도성차원을 넘어 조선시대 태조, 세종 대에 우리 선조들께서 농한기 엄동설한에 수십 만 명이 동원되어 축조된 도성으로 성돌 하나하나에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귀중한 문화재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본지는 이에 우리 선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자 중구의 대표 문화재인 한양도성과 중구의 각자성석에 대해 최근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지원사업의 일환을 발간된 ‘한양도성과 중구의 각자성석’자료를 연재로 옮겨보기로 했다.

2 나라의 근본을 다시 세우다
태조 대에 세운 한양도성은 토성구간이 많아서 견고하지 않았다. 자연석에 가까운 돌로 쌓은 석성구간은 일정치 않았다. 토성은 석성으로 고쳐 쌓고, 석성은 고르고 반듯하게 보수할 필요가 있었다. 도성을 고쳐 쌓아야한다는 논의는 태종 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태종은 도성수축에 나서지 못했다. 그것은 한양재천도와 개천 공사, 시전행랑 건설 등으로 고단한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태조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종은 1399년 3월 개경으로 환도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제2차 왕자의 난으로 병권을 장악한 이방원이 정종의 양위를 받아 1400년 11월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공신과 외척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한 뒤 1405년 10월 한양으로 다시 천도를 했다. 이때 태종은 새로이 창덕궁을 지었다. 조선의 두 번째 궁궐인 창덕궁은 한양 재천도를 결정한 1404년 10월 태종의 명에 따라 1년만인 1405년 10월에 완공했다. 태종은 자신의 셋째 아들인 세종에 양위를 한 후 태상왕이 되어서도 세종이 정치적으로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일들을 대신했는데, 도성을 수축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 도성수축은 세종 대인 1421년 도성수축도감을 설치하면서 시작했다. 이때 세종은 태상왕에게 의지했다. 도성을 토성에서 석성으로 고쳐 쌓는 것부터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태상왕의 힘을 빌렸다.        
태종은 기꺼이 아비의 마음으로 세종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도성 공사로 인한 고통과 원망이 세종에게 가지 않도록 백성들의 안위를 살폈다. 도성수축은 1422년 1월 15일 산신에 제를 지내고 시작해 2월 23일까지 약 40일 간에 걸쳐 진행된 끝에 온전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동궐도 (국보 제249호/동아대 소장)
동궐도 (국보 제249호/동아대 소장)

 

출처: 서울중구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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