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신문 창간 26주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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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19.01.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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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의 역사에 관해 총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중구에는 구청사 외에 15개 동주민센터가 있습니다.
본지가 창간 26주년을 맞이해 600년 전통 ‘서울 중구의 뿌리’를 찾아 보도합니다.

 

<서울의 중추도시 '중구'의 역사>

서울의 ‘심장’ 이라고 불리는 ‘중구’는 서울특별시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중구는 약 125,725명(2018년 12월 31일 통계)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1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진다. 중구에는 경제, 문화, 언론 및 유통의 중추기능이 집중돼 있으며 퇴계로, 을지로, 청계천로, 남대문로, 왕십리길 등의 간선도로가 관통하면서 지하철 1~6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또한 주·야간 활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 서울의 심장, 중구의 역사
1946년 9월 28일 서울특별시가 정식으로 탄생되고 8개 구로 구획되면서 ‘중구’도 서울시의 중심 구로 자리 잡게 됐다. 이후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 그리고 한국은행, 저축은행, 식산은행, 동화백화점, 경성전기를 비롯한 각 기관의 고층건물들이 중구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충무로 일대와 명동 부근이 번성하면서 서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대가 됐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중구 관내의 건물 78%가 파괴되고, 1953년 3월 말 기준 난민총수가 9237가구에 4만 894명에 달하는 등 시련을 겪게 된다.
전쟁의 여파로 부산에 피난해 있던 서울시청이 1952년 초 복귀하면서, 중구도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1966년 9월 8일 종로~청계천 구간에 현대상가가 착공되고,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가 완공돼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 호황을 누렸다. 백화점 또한 1963년, 삼성그룹이 동아백화점을 인수해 신세계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직영체제로 전환하여 1970년대 초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됐다. 대농그룹이 인수한 미도파백화점도 1973년에 건물을 개수하고 직영체제로 바꾸게 되자 서울의 중심상권은 충무로·명동으로 다시 옮겨가게 됐다.
중구를 책임져 온 역대 구청장으로는 민선 제1,2,3기 1,2,3대 김동일(金東一), 민선 제3기 4대 성낙합(成樂合), 민선 제4기 5대 정동일(鄭東一), 민선 제5기 6대 박형상(朴炯常), 민선 제5,6기 7,8대 최창식(崔昌植), 민선 제7기 9대 서양호(徐良鎬)가 있다.

- 중구의 ‘동’ 역사


<청구동>
청구(靑丘)라는 이름은 원래 중국에서 동방을 가리키는 의미 혹은 동쪽에 있는 나라를 일컬어 부르던 이름이다. 청구동(靑丘洞)은 신당동(新堂洞) 중에서 동호로(東湖路) 북쪽이자 다산로(茶山路) 동쪽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청구동 동명은 신당동에 있던 마을로 ‘앵구동(櫻丘洞)’으로 불리던 일본식 이름을 한국식으로 변경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 5월 청구동 사무소는 신당제4동사무소가 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됐다. 그 후 2013년 7월 20일 신당 제4동이 청구동으로 동명이 변경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산동>
다산동(茶山洞)은 신당동(新堂洞) 중에서 금호동길 남쪽과 다산로 서쪽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다산동의 동명은 이 일대를 지나는 다산로(茶山路)에서 유래하였으며, ‘다산’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호(號)에서 따온 것이다.
다산동은 1949년 이후에 구획된 성동구 신당동 중에서 충현동회 지역이었다. 1970년 5월 충현동사무소는 신당제2동사무소가 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됐다. 1992년 1월 신당제1동사무소 관할 일부지역이 신당제2동사무소 관할에 편입됐다. 그 후 2013년 7월 20일 신당제2동이 다산동으로 동명이 변경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수동>
약수동의 동명은 신당동 끝과 약수동이 이어진 부근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높고 큰 고개를 ‘버티고개’의 약수(藥水)에서 유래됐다. 옛날에는 길이 좁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도둑이 많았으므로 모양이 험악하고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을 보면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란 농담을 하였다. 약수동은 1949년 이후에 구획된 성동구 신당동 중에서 약수동회(藥水洞會) 지역이었다. 1970년 5월 약수동사무소는 신당제3동사무소가 됐고,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됐다. 1993년 5월 3일 재개발사업 승인으로 1994년 4월부터 건물 1,830동을 철거하여 총 면적 2만 138㎡에 총 5,150세대의 아파트가 신축됐으며 2000년 6월 10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2013년 7월 20일 신당제3동이 약수동으로 변경됐다.

<신당 5동>
신당제5동은 신당동이 분동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당동 동명은 신당(神堂)을 모신 동네라는 뜻에서 비롯됐는데, 갑오개혁 때 신당(神堂)과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뀐 데서 유래됐다.
1970년 5월 행정동과 관할 법정동을 일치시키고 성동구 문화동을 신당제5동으로 개칭하면서 행정동 이름이 탄생됐다. 1975년 10월 1일 중구로 편입된 후, 1980년 7월 1일 신당제7동이 폐동되어 그 일부가 신당제5동에 편입됐다. 2013년 7월 20일 신당제5동이 신당5동으로 동명이 변경된 것이다. 신당제1·2·3·4·6동이 각각 신당·다산·약수·청구·동화동(東化洞)으로 변경되는데, 신당5동은 백학동(白鶴洞)과 유락동(有樂洞) 두 동명 후보에 대한 주민 선호도가 비슷하여 변경이 보류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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