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신문 창간 26주년 특집
중구신문 창간 26주년 특집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19.01.3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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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에는 구청사 외에 15개 동주민센터가 있습니다.
본지가 창간 26주년을 맞이해 600년 전통 ‘서울 중구의 뿌리’를 찾아 보도합니다.

 - ‘중구’의 역사에 관해 총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서울의 중추도시 ‘중구’의 역사

서울의 ‘심장’ 이라고 불리는 ‘중구’는 서울특별시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중구는 약 125,725명(2018년 12월 31일 통계)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1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진다. 중구에는 경제, 문화, 언론 및 유통의 중추기능이 집중돼 있으며 퇴계로, 을지로, 청계천로, 남대문로, 왕십리길 등의 간선도로가 관통하면서 지하철 1~6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또한 주·야간 활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지난호에 이어서

<동화동>
동화동의 동명은 문화동(文化洞)의 동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됐다. 1947년 6월 동회제도를 시행하면서 앵구생구동회(櫻丘生駒洞會)가 설치됐는데, 1949년 6월 말 이전에 일본식 이름인 앵구를 없애고 동화동회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943년 6월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신당정은 성동구에 소속됐고, 1946년 10월 일본식 동명을 바꿀 때 성동구 신당동이 됐다.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중구로 편입된 후, 1992년 1월 3일 신당제5동사무소 관할 일부 지역이 신당제6동사무소 관할에 편입됐다. 그 후 2013년 7월 20일 신당제6동이 동화동으로 동명이 변경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공동>
소공동은 조선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慶貞公主)의 궁이 있어 ‘작은공주골’, 한자로 ‘소공주동’(小公主洞)으로 부른 데서 동명이 유래됐다. 동쪽은 남대문로2가, 서쪽은 태평로1가, 남쪽은 남대문로3가, 북창동과 접해있고, 북쪽은 을지로1가와 이웃해있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됐고, 1946년 소공동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은행거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은행이 들어섰고, 소공지하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조선호텔, 롯데호텔, 롯데백화점과 여행사 등 많은 사무실이 있다.

<회현동>
회현동은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는 데서 붙여졌으며, 회현(會賢), 회동(會洞)으로 부르기도 했다. 동쪽은 남산동, 서쪽은 남창동, 남쪽은 용산구 후암동, 북쪽은 남대문로·충무로와 접한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회현동1가·2가·3가로 바뀌었다. 현재 행정동인 회현동은 법정동인 회현동1~3가·남창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대문로3·4가 일부 지역의 행정도 담당한다. 예로부터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고 할 정도로 술이 유명해 주점이 많았는데, 특히 남촌인 장동(長洞) 일대가 유명했다.

<명동>
명례방(明禮坊)의 ‘명’자를 딴 것으로, 원래 명례방골이라고 하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하였다. 충무로·을지로·남대문로 사이에 있다. 1943년 중구의 관할지역이 됐고 1946년 명동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동은 서울특별시를 상징하는 번화가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충무로인 본정(本町)보다 낙후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주택가였으나 일제강점기 충무로가 상업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인접지역인 이곳도 그 영향을 받아 상가로 변하게 됐다. 명동은 한국의 금융 중심지이며 첨단 유행문화의 거리이기도 하다. 전국은행협회, YWCA, UNESCO회관, 로얄호텔 등과 다양한 종류의 소비재 상점들이 있다. 또한 종마루[鐘峴]에는 한국 가톨릭의 총본산인 명동성당이 있는데, 유신독재 등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인사들의 각종 집회와 농성, 피신 및 단식 장소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필동>
조선시대 이 마을에 남부의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있어 부동(部洞)이라고 하였는데 부동이 와전되어 ‘붓골’이라 했으며, 이 ‘붓골’을 한자로 표기해 필동이 됐다. 동쪽과 남쪽은 장충동, 서쪽은 예장동·주자동, 북쪽은 충무로와 접한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필동1·2·3가로 바뀌었다. 이 동은 법정동인 필동1·2·3가, 남학동(南學洞), 주자동(鑄字洞), 예장동(藝場洞), 충무로3가로 이루어져 있고, 장충동2가와 충무로4가 일부의 행정도 담당한다.

<장충동>
구한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과 열사들을 위해 제(祭)를 올리던 장충단(奬忠壇)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은 신당동, 서쪽은 필동, 남쪽은 용산구 한남동, 북쪽은 광희동·묵정동·쌍림동과 접한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동서헌정은 장충동1가로, 서사헌정은 장충동2가로 바뀌었다. 장충동1가에는 관우(關羽)의 영정을 모신 성제묘(聖帝廟)가 있어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며, 장충동1가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장충단길 주변에는 동의 명물인 돼지족발집이 밀집해 있다.

<광희동>
동 이름은 도성팔문(都城八門, 서울성곽 8문) 가운데 하나인 광희문(光熙門)이 있는 데서 붙여졌다. 동쪽은 신당동, 서쪽은 쌍림동, 남쪽은 장충동, 북쪽은 을지로와 접해 있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고, 1947년 광희동1·2가로 바뀌었다. 광희동은 법정동과 행정동의 명칭이 같은데, 광희1·2가·쌍림동·을지로6·7가로 이루어져 있고, 오장동 일부 지역의 행정도 맡고 있다. 조선시대에 광희문과 흥인지문 중간 지역이어서 두 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객주집이 발달했다.

<을지로동>
동명은 고대 중국 수(隨)의 대군을 격파시킨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중구 태평로1가에서 을지로7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이르는 곳이다. 1943년 중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 을지로1~7가로 나누어졌다. 종로·청계천로·퇴계로와 함께 서울시의 대표적인 상업·업무지구이며,  고층건물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개발이 늦어지다가 1984년 지하철 2호선 완공과 함께 블록 단위로 재개발 됐다. 1·2가 일대는 플라자·프레지던트·뉴코리아·롯데 호텔 등의 고급호텔과 백화점, 각종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으며, 3가에는 인제대학교부속백병원·을지병원 등의 의료기관이 있다. 4·5가 주변에는 방산·중부 시장 등 대형 재래시장을 비롯해 세운·삼풍·풍전 상가 등의 상가아파트, 건축내장재·인쇄·공구·조명기구 상가 등이 밀집해 있으며, 6·7가 일대에는 스포츠용품 상가와 신평화·동평화·청평화 시장 등 의류도매시장이 가까이 있다.

<신당동>
광희문 밖에 있는 신당(神堂)을 중심으로 많은 무당들이 모여 무당촌을 이룬데서 신당(神堂)이라 부르다가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 동쪽은 성동구 상왕십리동·금호동·옥수동, 서쪽은 을지로·광희동·장충동, 남쪽은 용산구 한남동, 북쪽은 종로구 창신동·숭인동과 접한다. 1943년 성동구에 편입됐고,  1946년 신당동으로 바뀐 후 1975년 중구 관할이 됐다. 신당동은 법정동과 행정동의 명칭이 같은데, 행정동인 신당1~6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당1동사무소에서는 흥인동과 무학동의 행정도 담당하고 있다. 신당동 일대에는 1920년까지만 해도 많은 묘지가 있었고, 일본인 전용 화장터인 신당리 화장장이 있었다.

<황학동>
동명의 유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黃鶴)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현재 신당5동 관내의 자연마을의 하나인 백학동(白鶴洞)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치해서 황학동이 생기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동쪽은 성동구 상왕십리동, 서쪽 흥인동, 남쪽 신당5동, 북쪽은 청계천로를 경계로 종로구 숭인동과 구계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43년 성동구에 편입된 뒤, 1946년 신당동으로 바뀌었다. 1966년 황학동이 법정동으로 분동되어, 1975년 중구 관할로 됐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 중기까지도 대부분 논밭이었으나 현재는 중앙시장과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중앙시장은 성동시장이라는 이름으로 1946년 설치됐는데, 미곡과 채소 등의 집산 도산매시장으로서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손꼽던 시장이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일명 도깨비시장이라고 불린다.

<중림동>
중림동 동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지명인 반석방(盤石坊)과 약전중동(藥田中洞)의 ‘중(中)’자와 한림동(翰林洞)의 ‘림(林)’자를 따서 붙여졌다. 동쪽은 의주로2가·봉래동2가, 서쪽은 마포구, 남쪽은 만리동1·2가와, 북쪽은 서대문구 합동과 구계를 이루고 있다. 1943년 서대문구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중림동으로 바뀌었고, 1975년 중구 관할이 됐다. 이 동은 법정동과 행정동의 명칭이 같은데, 중림동, 의주로2가, 만리동1·2가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양정중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손기정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김나임 기자

 

중구를 상징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도시브랜드>
중구는 서울의 사회, 경제, 문화, 교통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음은 물론 숭례문, 명동, 남산, 서울 성곽길, 청계천, 남대문시장, 동대문패션타운 등 대한민국 관광의 중심지다. 그러한 중구만의 정체성과 특장점을 나타낸 “서울의 중심(Heart of Seoul)”을 키워드로 중구 도시브랜드에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중구의 구색>

명동에서 나타나는 활기와 열정이 보여지는 ‘중구 빨간색’

 

BI (브랜드슬로건)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중구만의 정체성을 힘있고 역동적인 손글씨(Calligraphy)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냄.

 

 

CI (휘장)
중구가 서울의 중심 이라는 것을 가장 단순한 원의 형태로 표현하고 Junggu의 이니셜 J자를 위로 뻗게 하여 글로벌 명품도시로 도약하는 중구의 비전을 담아냄. 색상은 핵심과 중심을 나타내는 빨간색과 주황색을 사용.

 

 

Character (하티)
기존의 지자체 캐릭터 형식을 벗어나서 단순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제작, 하트는 서울의 심장부를 고리는 주민과의 소통을 상징.

 

 

 

 

<중구의 나무>

소나무
 

 

 

<중구의 꽃>
장미
 

 

 

<중구의 새>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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