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야산 기행문 (고재성 한국여성문예원 회원)
척야산 기행문 (고재성 한국여성문예원 회원)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19.06.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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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척야산 기행문

문예원 형제들과 오랜만의 회포를 푸느라 전날의 주독이 아직 깨지 못한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중구구민회관 앞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대형버스가 벌써 와 기다리고 있고 아는 이, 모르는 이 하나 둘 모여든다.
작년 이만 때쯤 부여, 옥천으로 문학기행을 간다고 이 장면이 연출됐었는데 또 다시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여행은 즐거움이요, 일상의 탈출이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만남이기에 우리는 어린 날의 소풍 가는 날 마냥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한국여성문예원의 봄날의 소풍!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거리는 벌써부터 서울을 떠나려는 차량으로 북적거린다. 이들도 모두 소풍을 떠나는 걸까? 아침상은 받고들 나왔는지 참, 바지런하기도 하다.

 

예전 강원도 가던 길은 46번 국도 경춘선을 타고 갔었는데 이제는 새로 뻗은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는 모양이다. 그때의 춘천가도는 수 많은 차량으로 정체가 되었어도 달리는 차창 밖으로 짓푸른 녹음이 펼쳐진 산과 들판 사이로 꾸불거린 북한강을 볼 수 있었기에 오랜만 도회지를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놓을 수가 있어 좋았는데 새로 뻗은 강원도 가는 길은 산의 심장을 파 헤쳐놓은 터널들의 사열을 받으며 지나치게 하지만 그래도 예전 암묵의 터널을 지나치던 것 보단 쾌적함을 줌에 다소 위안을 받게 한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며 “참, 우리나라가 잘 살긴 잘사는 나라 구나”람을 느낀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무료함을 주지 않으려 형형색색의 조명등과, 터널 벽면의 설치한 조형물들, 잠시 쉬어갔던 휴게소 화장실의 남자 소변대 위의 설치된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게 삶의 질인가?”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버스는 두 시간여를 숨가쁘게 달린 끝에 우리 일행을 척야산 수목원 주차장에 부려놓았다. 출발하기 전 나눠 준 유인물에는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덕원 의사의 후손이 가꿔놓은 수목원이라 적혀있어 과연 어떤 곳 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켰는데 주차장 너머 자그마한 언덕 위에는 항쟁탑과 어디서 봤음직한 거석의 비문이 세워져 있고, 발해석등과 광개토대왕비가 놓여있어 더욱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남대문시장 장돌뱅이 출신의 김창묵회장!
98세 노인이 우리를 불러 세운다. 그는 김덕원의사의 후손으로 평생의 모은 재산으로 이 강원도 홍천 척야산 자락에 100년 전 만세운동을 벌였던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기념 공원을 세운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 가족을 이끌고 나라독립을 위해 만주로 떠났던 이회영선생이 떠오른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던 사람들….
 

98세 노인은 아니, 그날에 본 김창목회장은 50, 60세의 중 장년의 모습처럼 쩌렁쩌렁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서 서 그리 외치고 있었다. “나라 잃은 슬픈 한의 우국지사들을 사랑의 가슴으로 품으려 이 척야산 자락에 문화수목원을 세웠노라고….”
그 누가 이들을 달랠 수 있으랴!
마음으로만 애국지사를 부르짖는 현실 앞에 그날의 애절한 독립의지 속에 일제의 강압과 총탄에 쓰러진 그들의 영혼이나마 위안하려 그는 노년의 정열을 이 척야산 수목원에 쏟아 붓지 안 했나 싶다.

 

나는 제주에서 1주일에 한 두 개의 오름을 동네 뒷산 오르듯 하고 있다. 제주의 오름과 육지의 산은 다르다. 제주의 오름은 봉긋한 여자의 유방을 더듬듯 오르는가 싶지만 육지의 산은 거치른 화강암과 산이 높아 어느 날 택일하여 완전무장 한 군인이 고지를 점령하려는 듯이 땀방울 흘러내리며 올라야 한다. 하지만 그날의 척야산은 제주의 오름과 같이 부드러우며 산자락 골짜기 마다 산철쭉과 영산홍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어 수목원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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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각, 꽃피는 언덕, 의사봉, 사국봉, 세류정, 열세굽이 하늘 길에서 내려다본 근처 용호강에서 흘러내린 실개천, 그 너머 알콩달콩 집 지어 모여 사는 동창리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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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열세굽이 하늘 길을 돌고 돌아 내려와 예부터 마을의 젖줄 이었다는 수로 길을 곁에서 걸었던 김창묵회장의 자제이며, 이번 소풍을 주선한 김재룡 남대문상인 회장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본다.

 

“아직 이곳은 무료입장인 것 같은데 언제 유료화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여태 노인네가 살아 계신데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투자한 자금과 공원을 관리하시려면 많은 자금이 들어 갈 텐데요.”
“아까도 노인네 말씀하셨다시피 자신은 안 돌아 가신데요.  그 분이 잘 해나가실 겁니다.”
 
아직은 수목원과는 저 멀리 앉아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척야산 수목원을 맡아야 할 김회장의 앞으로의 행로가 중요하다. 평생을 공들여왔던 아버지의 유업을 안고 그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아버지의 애국투사들에 대한 공들임을 그 보다 한 세대 늦게 온 그에게 어떻게 와 닿을지, 나와의 연배 차가 얼마 되지 안됨직한 그에게서 아직은 확신을 못 갖게 하는 건 무슨 연유일까?

 

모쪼록 이 아름다운 이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어 자연을 벗삼아 걸으며 선혈들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점심때가 한참은 가있어 그런지 배가 고프다. 일행은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홍천의 지역 주인지 시원한 막걸리 몇 병과 벌건 고추장 양념이 고명으로 오른 막국수가 각자의 테이블에 올려진다. 모두가 허기가 졌는지 막걸리 사발 단숨에 털어내고 입가에 고추장 자국을 남기며 젓가락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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