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선정
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선정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19.10.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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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의지와 동양평화 세계에 알린 영웅

 

도마 안중근 의사
도마 안중근 의사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를 ‘19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안중근 의사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兒名)을 응칠(應七)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했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무술에 더 열중했다.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다.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 안태훈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했으며,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해 신식 학문을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도마[Thomas, 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1904년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을 경영하고 이듬해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남포의 돈의학교를 인수해 인재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국운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바로세울 수 없다고 판단해, 1907년 연해주로 가서 의병운동에 참가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했다. 그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동지 우덕순과 함께 거사하기로 뜻을 같이하고 동지 조도선과 통역 유동하와 함께 이강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해 역 플랫폼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됐다.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됐고 이듬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됐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했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옥중에서 휘호한 많은 유묵이 보물로 지정됐다.
한편, 정부는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1970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471번지에 기념관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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