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노인의 위상3
한국에서의 노인의 위상3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19.10.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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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철학과 웰다잉(well-dying)'
황진수 한성대학교 명예교수
황진수 한성대학교 명예교수

인간의 영원한 꿈은 오래살고 싶은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5복에서도 첫 번째가 수()이다. , 오래 살아야 부귀영화도 볼 수 있고 자녀들의 성공도 볼 수 있으며, 맛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하는 성경 말씀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있다'로 바꾸어 놓았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평균 수명은 30세였다. 우리나라도 해방 전후의 평균 수명이 45세였다. 그런 사회적 현실이 이제 100세의 몸을 이루는 시기가 도래했다.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장수노인의 증가로 인해 세상은 회색빛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 인류가 생성한 이후 가장 장수하는 사회가 도래하면서 이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령사회문제를 복지정책으로 내세워 복지 수혜자들에게 합리적 대안을 실천하면 불평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포퓰리즘적 복지시책으로 복지 수요자들에게 퍼주다 보면 국가재정은 바닥이 나는 모순이 충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에 노인이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추구를 계량적 차원에서 추구하다보면 의학적·생물학적으로 수명연장기법으로 귀착될 수도 있다.

또 노년의 인생을 사회 복지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인간의 모습은 노년에 대한 인문학적·철학적 접근이다. 죽음은 이별이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식이 있을 때 살아있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언제 죽느냐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기본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부귀영화를 꿈꾸기도 한다. 불교의 예를 들어본다. 중생들은 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증상에 따라 약사여래를 찾는다. 자비심이 부족해서 자신의 삶의 문제가 생길 때는 관세음보살을 찾았고,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문수보살을 찾았다. 또 입으로만 말할 뿐 실천이 부족할 때는 보현보살을 찾아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아미타불에 극락왕생을 빌기도 하였다. 종교의 영이 불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종교가 거의 유사한 희구의 자세로 인간의 복덕을 추구한다.

죽음이란 인간 최고의 스승이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각성하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노년철학이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암 진단을 받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럼 당신들은 정말로 잃을 게 없다"는 말을 함으로써 감동을 주었다.

여기에서 추가로 논의하고자하는 것은 웰다잉(well-dying)이다. 흔히 웰다잉은 웰빙(well-being)이라고 말한다. 웰다잉이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여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죽음을 맞이 했을 때에 존엄사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이는 의학적·간호학적 측면에서 보는 웰다잉이고 철학적 입장의 웰다잉은 아니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을 선택하는 것'으로 말한다.

불교에서는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과 죽음의 문턱에서 과거에 내가 실행했던 베풂· 나눔· 섬김에 대한 기억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노년의 특징을 4D로 표현한다. 질병(disease), 장애(disability), 치매(dimentia), 의존(dependency)로 집약한다. 인간이 죽음에 대한 사유의 틀을 4가지로 가치 체계를 세우고 있는데 첫째, 생물학적 죽음이다. 이는 죽음의 문제는 삶의 문제이고 삶의 본질적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둘째, 종교적 입장의 죽음으로 죽음이후 인간의 운명을 다룬 것으로 불멸과 부활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셋째, 철학적 입장의 죽음은 나는 과연 나의 죽음을 알 수 있는가라는 인식의 문제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넷째는 죽음의 공포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죽음의 이해와 실천의 문제를 연구하여 왔다.

이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의 철학적 견해가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이 괴로울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나 죽음 그 자체는 절대 괴로움이 될 수 없다는 에피쿠로스(BC 341~271) 주장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려면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스토아학파의 주장 인간은 절대로 죽음을 정확이 알거나 직시할 수 없다는 스피노자(1632~1677)의 주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죽음을 가지고 온다는 주장 죽음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1788~1860)의 주장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의 공포에 대한 유무를 철학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있다.(김인종. 노년기 죽음에 관한 종교와 복지의 관계의 철학. 2001.)

죽음은 인간만의 대화주제이다. 다른 생물이나 동물은 죽음을 소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인간만이 오직 죽음을 죽는다.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가장 규칙적이고 엄정한 것은 무엇인가. 공산품이 아니다. 인공위성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의식, 종교적 의식이다. 죽음은 의식에 의해 문화가 되었다.(김열규.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궁리. 2001.) (다음호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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