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독립운동가에 정용기 선생 선정
2020년 1월 독립운동가에 정용기 선생 선정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20.01.0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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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여 명 의병 이끌며 日군과 대적한 영웅

 

정용기 선생
정용기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의병대장 출신인 정용기 선생(1862~1907)2020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정용기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으로부터 의병을 일으킬 것을 비밀리에 명령받은 부친 정환직 선생과 함께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내려가 군사를 모집했다. 19061월경 영천창의소를 설치하고 권세가(勸世歌)를 지어 대한독립만세의 기치를 들고 함께 의병으로 나설 것을 호소했다.

이에 영남지역에서 1천여 명의 의병이 모여들었고 그는 산남의진(山南義陳)의 대장으로 추대돼 신돌석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펼치다 일본군에 붙잡혀 대구감옥에서 4개월간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 영천군 국채보상단연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영천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1907년 다시 의병부대를 결성한 그는 영천·청송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하며 혁혁한 전과를 거뒀다. 같은 해 9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선생과 아버지 정환직을 추모하기 위해 생존 지사들과 유족들을 중심으로 19342월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626번지에 충효재(忠孝齋)를 건립하였다.

광복 후에는 산남의진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19633월에는 영천시 창구동 조양각 후원에 대장정공양세순국기념 산남의진비(大將鄭公兩世殉國紀念 山南義陣碑)’를 세웠고, 198811월에는 충효재 뜰에 화천지수전세비(華泉之水傳世碑)’를 세워 양세 의병장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선생의 묘소는 19636월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614번지 양세의병장 묘역에 부부 합장묘로 이장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정용기

훈격: 독립장

서훈년도: 1962

1905~1906년 부친과 의병조직, 산남의병장

1907년 청하, 청송, 영천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

1907년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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