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치하 속 독립운동을 펼친 교육자 김세환(1889.11.18~1945.9.16)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9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김세환은 보성중학교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한 뒤 수원상업회의소에 근무하였다. 미국인 선교사 밀리의 후원을 받아, 수원의 삼일남녀학교(三一男女學校)를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2월 21일 이갑성(李甲成)의 집에서 독립선언의 방법으로 천도교측과 연합하는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기독교 측 대표들의 철야회합에 참가하였다.
이 때 이 문제를 이인환(李寅煥)과 함태영(咸台永)에게 일임하고 지방의 동지규합을 위하여 2월 22일 서울을 출발하여, 수원·이천지역에서 활동하였다.
2월 24일 서울로 올라와 결과를 보고한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동지규합에 온 힘을 기울였다.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일본경찰에 붙잡히고, 김세환도 중앙지도체 4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3월 13일 검거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재판 끝에 다음해 10월 무죄로 석방된 김세환은 수개월 간 옥고를 치른 뒤 출감한 뒤에도 교육사업을 통하여 재산가인 홍사훈(洪思勳)을 설득, 수원상업학교를 설립하여 2세교육을 통한 계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8·15광복을 맞이한 1개월 뒤 사망하였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훈 격: 독립장
서훈년도: 1963년
주요공적: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1인
삼일여학교 교사로서 민족의식 교육
1919년 수원과 충청 지역 만세운동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