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8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석영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 8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석영 선생 선정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20.07.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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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팔아 독립운동자금 댄 인물이자 신흥 무관학교 실질적 설립자
이석영 선생
이석영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댄 이석영(1885~1934)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의 본관은 경주이다. 백사·이항복(李恒福)10세손이며 이유승(李裕承)6형제 중 둘째 아들로서 조선 말기의 개화파 문신 귤산 이유원(李裕元, 18141888)에게 입양되어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임하려(林下廬)에서 살았다.

21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례원소경을 거쳐 종2품 가선대부에 까지 오른다. 1910년 가장 먼저 독립 운동에 뛰어든 동생인 우당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의 권유로 가곡리의 모든 땅과 재산을 처분하여 형 건영(健榮, 1853~1940), 동생 철영(喆榮, 1863~1925) 회영(會榮), 시영(始榮, 1869~1953) 호영(1875~1933) 6형제와 그의 가족들은 19101230일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이주를 하였다. 당시 6형제가 가지고 간 돈은 엽전 26가마였으며 그중 이석영은 가곡리의 소유 전답 6,000석 토지를 매각하여 현금 40만원(당시 쌀 1석은 3원이었음)을 내어놓아 가장 많은 액수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타 매체를 통해 6형제가 삼한 갑족으로 대대로 갑부 집으로 아는데 실제로 방송에서 나오는 남양주 땅은 죄다 이석영이 양자로 들어간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이유원은 흥선대원군 시절 유명한 부호였는데 집권 초기에 정치 자금을 제공한 걸로도 유명하다. 당시 기준으로 이석영은 조선의 부호 순위 4위라고. 경기일보에 따르면 이석영이 물려받은 액수는 현재가치로 1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석영이 유별나게 부자고 나머지 형제의 부도 대단해서, 명동성당 주변이 6형제 집안의 땅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동네인 서울 도심의 땅들을 형제끼리 나눠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땅들과 재산을 모두 처분해 독립 운동을 위해 쓴 것도 더더욱 놀랍다.

6형제는 제일 먼저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국내에서 모여든 청년들에게 구국의 이념과 항일 정신을 고취시켜 조국 광복의 중견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신흥 강습소를 개소하였다. 이것이 바로 신흥 무관 학교의 전신이다. 19114월 제1기 졸업생을 배출하니 변영태, 성준용, 김련 등 40명이다. 신흥 강습소의 본관과 사옥을 준공하고, 1913년 신흥 중학교로 개칭하고 군사반을 두었다. 1919년 중학교를 폐지하고 신흥 무관 학교로 개칭하니 1920년 폐교 때까지 10년간 2,1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청산리 대첩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때 이석영의 큰 아들 이규준(李圭俊)은 항일 독립 운동가가 일제의 회유로 변절하여 독립 운동 진영에 피해를 주는 자들을 체포 암살하는 다물단의 단장으로 활동하던 중 북경에서 암살되었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는데, 우선 큰 아들 이규준은 독립 운동을 하였고 여러 업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독립 운동가 박용만을 암살하여 일제에게 회유당해 변절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문헌 기록상에는 이미 박용만이 암살당하기 1년전에 병사한 것으로 적혀있다. 박용만이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 자세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석영의 차남 이규서는 논란이 있는 형과는 달리 일제에게 회유당해 변절해서 자신의 숙부인 이회영을 밀고해서 죽게 만들었다. 아주 친일 + 패륜 이것 때문에 주장이 엇갈리는 형과는 달리 이쪽은 경주 이씨의 수치로 남게 되었다. 이회영 사후, 밀고 사실이 발각되어 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끌려가 처형되었다.

신흥 무관 학교의 실질적 설립자 이석영은 안타깝게도 가난에 지쳐 두부 비지로 연명하다가 굶어서 별세했다. 화도읍 가곡리에 이석영이 살던 이하려의 터에는 노거수 은행나무만 서 있으며, 원찰인 보광사(普光寺)가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1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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