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9월의 독립운동가로 채원개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 9월의 독립운동가로 채원개 선생 선정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20.08.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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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청사 확보에 크게 기여한 인물
독립운동가 채원개 선생
독립운동가 채원개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평안대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채원개(1895~1974)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독립운동가 채원개 선생은 1895324일 평안남도 영원군 온화면 온양리에서 채병묵(蔡秉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의명소학교(義明小學校)를 졸업했고 1910년 서울의 오성학교(五星學校)에 입학했지만 학교가 폐쇄되자 군사학을 배우기 위해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서 4년간 복무했다. 이후 19193.1 운동이 발발하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경찰소 유치장에 감금되었다가 탈옥한 후 만주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훈련책으로 활동했다. 1921년 통의부(統義府) 대표로 김창환(金昌煥심용준(沈龍俊) 등과 함께 상해(上海)로 파견되어 국민대표자대회에 참석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중국 낙양육군강무학교에 파견되어 한국인 유학생의 지도책임을 맡았으며, 중국의 직봉전쟁(直奉戰爭)에 참가해 실전경험을 쌓았다. 1925년 임시정부로부터 육군대위로 임명되었으며, 임시의정원 평안대의원(平安代議員)에 피선되었다. 그리고 1926년 임시정부로부터 참의부군무위원(參議府軍務委員)에 임명되고, 1927년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파견되어 유학생을 지도했다. 1930년 이후 중국육군제59사 작전참모, 중국육군제2사 참모처장, 교도단장, 중국제19집단군 총사령부 작전참모, 중국육군제78사 참모장 등 1939년까지 중국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3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광동지부 간부로 활동했으며, 임시정부가 광동으로 이전하자 이준식과 함께 임시정부 청사를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409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그는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에 임명되어 복무하였으며, 1943년에는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기도 했다. 1944년에는 광복군 제1지대장에 임명되어 항일 활동을 지속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교포의 재산 보호 및 안전 귀환에 노력하다 194612월에 귀국했으며, 이후 1949년 육군사관학교 3기특과(三期特科)를 나온 뒤 연대장·사단장을 거쳐 1950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으며 1974216일 서울에서 병사했다.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훈격: 독립장

서훈년도: 1968

 

주요공적:

1934년 한국독립당에 입당, 광동지부 간부로 활동

1940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장

1944년 광복군 제 1지대장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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