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서울의 중심 중구의 역사 25
특집기획- 서울의 중심 중구의 역사 25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20.11.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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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동네방네 이야기 시리즈

본지는 올해 창간 27주년을 기념하여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서울시의 역사를 총 네 차례에 걸쳐 재조명해보았다. 서울 역사 고증 활동에 탄력을 받은 본지는 이번에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서울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한 중구의 역사를 동별로 묶어 소개해보기로 했다.

 

장충단공원의 과거(상)와 현재(하)
장충단공원의 과거(상)와 현재(하)

4장 필동 권역

(지난 호에 이어)

07. 충무로3(忠武路三街)

충무로3가를 비롯한 이 일대는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으로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충무로를 중심으로 명동과 진고개 일대에 일본인 상권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일본인들이 물러간 이후에도 여전히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광복과 함께 문인영화인의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부터 일본인을 위한 영화관이 설립되어 있었던 까닭에 광복이후에도 이곳은 영화의 거리로 한동안 명맥이 지속되었다. 특히 2000년대 초까지 많은 영화사가 운집하고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충무로가 영화 제작의 중심지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충무로 일대는 영화산업의 변화 등으로 침체기에 들어섰다. 이에 서울시 중구에서는 충무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영화축제 이벤트와 중구의 관광 명소를 잇는 관광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축제충무로 국제영화제이다. 충무로 영화거리는 충무로를 중심으로 한 영화의 거리, 한류스타의 거리를 이어 명동까지 연결하는 루트의 시작점이다.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축제2004년 제1회를 시작으로 영화의 거리일대에서 한국영화테마 전시회 및 축하공연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진행되었다.

 

5장 장충동 권역

장충동은 장충동1, 장충동2, 묵정동 일부 등 3개 법정동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할구역 명칭이다. 2018년 기준 장충동의 면적은 1.36이며 인구는 2,661세대에 5,606명이 거주하고 있다. 동의 이름은 부근에 있던 장충단에서 따온 것이다. 1900년 설치된 장충단은 을미사변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열사를 기리는 제를 지내던 곳으로 오늘날의 국립 현충원과 같은 성격을 지닌 곳이다. 1946101일 일본식 동 이름을 유서 깊은 우리 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 지역 일대가 장충동으로 이름 지어졌다. 묵정동은 먹절골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비롯되는데 이 먹절골은 지금의 묵정동, 충무로4~5, 필동2~3가에 걸쳐 있던 지역이다. 오래 전 이 일대는 먹절 혹은 묵사로 부르던 절이 있어서 먹절골 혹은 먹적골, 묵동(墨洞), 묵사동 등으로 불렸다. 먹절골에는 또 매우 깊어 늘 시커멓게 보이는 우물이 있었는데 먹절골의 감정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묵정동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현재의 장충동 일대는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552방 중 남부 명철방이 있던 곳이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 장충동1가 지역은 동사헌정(東四輯町), 장충동2가 지역은 서사헌정(西四軒町)이 설치되었고, 광복 후 194610월 장충동1가동회와 장충동2가동회로 바뀌어 각각 장충동12가 지역의 행정을, 묵정동은 1947년 말에 묵정동회가 설치되어 각각 그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19554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 동 설치조례에 의한 행정동제 실시로 각각 장충동1가동, 장충동2가동이 되었고, 묵정동은 충무로5가와 함께 야현동의 관할에 편입되었다. 19807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413호 동사무소 설치조례에 의해 충무로45가동의 관할구역 일부가 장충동으로 편입 조정될 때 묵정동 일부가 장충동 관할이 되었고, 198591일장충동관할에 묵정동이 편입되면서 장충동 관할구역은 장충동1, 장충동2, 묵정동이 포함되어 오늘에 이른다.

 

01. 장충동1(奬忠洞一街)

광희동사거리에서 장충체육관 앞 교차로에 이르는 장충단로 동쪽, 지하철 3호선동대입구역 북동쪽 일대에 위치한 장충동1(奬忠洞一街)의 동명은 이곳 남쪽에 있던 장충단(獎忠壇)의 이름을 따서 제정한 것이다. 장충동1가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철방(明哲坊)에 속하였고 일제강점기 동사헌정(東四輯町)으로 불리다가 1946101일에 중구장충동1가로 되었다.

장충동1가는 동으로 신당동, 남쪽과 서쪽에 장충동2가가 위치하며 북쪽으로 광희동2가와 접하고 있다. 장충단로와 동호로가 동의 서쪽과 남쪽을 지나며 이웃 동과의 경계 역할을 하는데 도로 연변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많은 주택이 밀집해 있다. 일찍부터 일본인이 거주했던 지역적 특성으로 아직도 일제식 건물구조를 지닌 가옥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예전에 이곳과 신당동에 걸쳐서 숲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숲이 많은 벌판이어서 숲벌이라 불렀으며, 한자명으로 수평리(藪坪里)라고 하였다. 지금은 숲 대신 주택과 빌딩이 밀집해 있다. 또한 지금의 장충동1가에서 광희동2가에 걸쳐 지레목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신당동 쪽으로 가는 길에 산줄기가 끊어져 가로질러 가는 길목이 있었는데, 이처럼 지레목골이란 산줄기가 끊어진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명으로는 그 음을 따라 지례동(知禮洞)이라 하였다.

장충단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순직한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과 훈련대장 홍계훈(洪啓薰) 이하 장병들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 순국한 장병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장충단 터는 그 장충단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 일대에 해당한다. 1900년 원수부(元帥府)는 어영청(御營廳)의 분원인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자리에 단을 설치하였고, 고종이 장충단이라 명명하였다. 이듬해인 1901, 육군법원장 백성기(白性基)의 상소로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에서 순직한 여타 장병들을 함께 제향하게 되었다.

장충단은 현재 장충단비가 있는 곳에서 국립극장까지 아우르는 넓은 공간이며, 제단을 비롯해 상당히 많은 시설과 부속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 건물인 장충단 제단은 현 신라호텔 자리에 건설되었고, 부속건물들은 현 장충단공원 자리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가 1908년부터 대한제국정부에 장충단에서 지내는 제사를 중단하도록 요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권피탈 후에는 장충단 비석을 파내어 숲속에 버리고, 사전(祀典)과 부속건물을 폐쇄하였다.

1919년 일제는 장충단과 동대문 근처의 훈련원(訓練院) 터를 묶어 공원운동장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그해 6월에 공원을 개원하였다. 광복 직후 장충단 터에 일제가 세웠던 건물과 기념비들은 모두 철거되고, 1956년 동작동 국립묘지가 조성되기 전까지 국립묘지로 사용되었다. 이후 장충단 일대에 장충체육관, 영빈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 국립극장, 재향군인회관 등이 들어섰다. 다만 장충단 비석만이 현 남산공원 수표교 서쪽에 다시 세워져 그 영욕의 세월을 증거 한다. 1988년부터 서울특별시 중구청에서는 매년 9월에서 10월에 장충단 제향을 이어가고 있다.

장충동135번지에는 관운장(關雲將)을 모시는 성제묘(聖帝廟)가 있는데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관우(關羽)를 모시는 신앙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군대에 의해 전래되었으며, 이는 전란의 고난 속에서 군사를 지켜주는 무장(武將)의 존재가 신앙의 대상으로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국가와 민간 모두 관우를 모시는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기 시작하는데, 그 무렵 서울 도성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묘(祠廟)가 동묘(東廟)서묘(西廟)중묘(中廟)남묘(南廟)북묘(北廟)로 분포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중 동묘와 남묘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묘였고, 중묘와 북묘, 서묘는 민간에서 모시던 것이다. 장충동1가에 있었던 관왕묘는 민간에서 모시던 것이었다. 관왕묘에 대한 제례의식은 영조에서 정조 연간에 이르며 더욱 높아져서 갖가지 제례의식이 정비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이후인 1901년부터는 관왕묘가 관제묘로 격상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이곳 관왕묘도 성제묘(聖帝廟)로 격상되었다.   [자료제공: 중구문화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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