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6월 독립운동가에 임병극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 6월 독립운동가에 임병극 선생 선정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20.05.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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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승리로 독립전쟁의 서막을 알린 인물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제2중대장에 임명되어 일본군과의 전투를 지휘한 임병극(1885~미상)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임병극 선생은 평안도 출신으로, 1885(고종 22)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7년 중국 만주로 건너가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해 1919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들어가 제2중대장으로 활약한 뒤, 이듬해 5월 사관학교 설립을 통한 독립군 양성과 재정 확보, 무기 구입 및 중국 혁명당과의 친밀한 관계 유지 등을 위한실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이어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피복과장을 거쳐, 1921년 군비총단(軍備總團) 경호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의 무기 구입을 위해 75명의 부하를 이끌고 러시아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19226월 고려혁명군연해주(沿海州) 총지부 남부 사령관으로 활동한 뒤, 군비단 별동대장으로 활약하면서 극동공화국(極東共和國) 인민혁명군 부대에 편입, 패주하는 러시아 백파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을 때에는 창조파(創造派)를 지지해 지청천(池靑天김세혁(金世爀) 등과 함께 사관학교를 설립, 독립군을 양성하고자하였으나 신생 러시아와 갈등을 빚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듬해 5월 북간도로이동해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옌지延吉에서 중국 군대에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일본인들이 끈질기게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동지들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이후 러시아로 건너가 콜호스(집단농장) 등에서 일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행적(사망연도 미상)은 전하지 않는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훈격: 독립장

서훈년도: 1995

 

주요공적:

1920년 대한국민회 지휘관으로 봉오동 전투 승리

1921~1922년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대일항전 전개

1924년 중국군에 체포, 징역 15년 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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