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서울의 중심 중구의 역사 18
특집기획- 서울의 중심 중구의 역사 18
  • 인터넷편집부
  • 승인 2020.08.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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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동네방네 이야기 시리즈

본지는 올해 창간 27주년을 기념하여 지난해부터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서울시의 역사를 총 네 차례에 걸쳐 재조명해보았다. 서울 역사 고증 활동에 탄력을 받은 본지는 이번에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서울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한 중구의 역사를 동별로 묶어 소개해보기로 했다.

1960년대 중반의 남산 KBS 사옥
1960년대 중반의 남산 KBS 사옥

3장 명동권역

(지난 호에 이어)

17. 남산동2(南山洞二街)

1777(정조 1)에 규장각 제학 서명응(徐命膺)의 건의에 따라 교서관은 규장각에 편입되었다. 이에 규장각을 내각(內閣)이라 하고, 속사(屬司)가 된 교서관을 외각(外閣)이라 하였다. 위치도 창덕궁 돈화문 밖으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 중구 퇴계로2056에 해당하는 교서관 터는 조선 초기부터병자호란 이전까지 교서관이 있던 자리이다. 위치는 숭의여자대학교 맞은편으로 지금의 숭의여자대학교 제1별관이 위치한 부근에 해당한다.

 

18. 남산동3(南山洞三街)

퇴계로 남쪽, 명동역 동쪽 출구에서 옛 영화진흥공사까지를 아우르는 남산 기슭에 위치하는 남산동3(南山洞三街)는 조선시대 초기 한성부 남부 명례방에 속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에 남산정3정목(南山町三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101일 일제 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남산동3가로 되었다. 남산동이라는 동명은 이곳 일대가 남산 북쪽의 기슭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예부터 남산골이라고 불리던 데서 유래하였다. 남산동3가는 동쪽으로 주자동과 예장동의 일부 지역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남산동2가와 접한다. 남쪽은 예장동으로 남산 기슭에까지 뻗어 올라가 있고 북쪽으로는 충무로2가와 퇴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남산동3가는 남산동1가나 남산동2가와는 달리 소파로, 퇴계로, 삼일대로 등이 서로 교차하는 인근에 위치하므로 비교적 일찍부터 상업지역으로 발달하였다. 동의 남동쪽과 북쪽은 상가지구이고 남산동2가와 접한 도로 안쪽 깊숙한 곳은 주택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남산 KBS-TV 시절 스튜디오로 쓰였던 KBS 옛 사옥은 이후 영화진흥공사로 쓰이다 현재는 케이블 방송 사무실로 쓰이고 있으며, 대한적십자사가 소파길 연변에 위치하고 있어 이 일대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각광받는 지역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구 영화진흥공사는 1973년에 설립되어 종로구 내자동에서 이곳으로 이전 하였는데, 지금은 영화진흥위원회로 개편되어 동대문구 홍릉으로 다시 옮겨갔다. 원래 이 건물은 한때 KBS-TV 스튜디오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TV를 선보인 것은 1956512일 첫 시험방송을 한 HLKZ-TV였지만, 본격적인 한국 TV의 역사는 1961KBS-TV(당시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의 개국으로 시작되었다. 1976년 여의도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까지 남산 KBS 사옥은 한국 TV 방송의 산실이었다. 19769월 영화진흥공사에서 이 건물을 인수하여 19771월부터 1995년까지 영화진흥공사 사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케이블 방송국 및 각종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으며 문화콘텐츠산업과 관련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내의 관람시설로는 2005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전용 상영관인 서울애니시네마카툰뮤지엄(만화의 집)’, 기획테마 전시실, 도서영상정보실이 있고, 교육시설로는 체험관, 세미나실, 원동화실, 디지털교육실, 캐릭터체험전시실 등이 있다. 전문시설로 영상편집실, 녹음편집실, 캐릭터원형제작실이 있으며 그밖에 지원시설로는 창작지원실, 관련협회단체 사무실이 있다.

 

19. 회현동3(會賢洞三街)

회현동3(會賢洞三街)는 퇴계로 남쪽, 지하철 4호선 명동역 4번 출구 근방에 위치하는 곳으로,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성부 남부 호현방(好賢坊, 고종 때 회현방(會賢坊)으로 바뀜)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일제 강점기에 욱정3정목(旭町三丁目)이라 불리다가, 1946101일 일제식동명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회현동3가로 되었다. ‘회현(會賢)’이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데서 회현동의 동명이 유래하였다.

회현동3가는 동쪽으로 남산동1가와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충무로1가와 퇴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서쪽은회현동2, 남쪽은 회현동1가로 둘러싸였는데 퇴계로가 개설되기 전만 해도 이른바 남촌으로 한갓 남산골샌님들이 거주하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퇴계로가 개설되고 여리 차례에 걸쳐 지금의 노폭에 이르는 확장이 되면서부터 회현동3가는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회현동3가에 있었던 자연 마을로는 낙동(駱洞)과 남산골을 들 수 있다. 낙동은 충무로1, 명동2, 회현동3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예로부터 타락골[駝酪谷]타락동(駝酪洞)이라고도 불렸는데, ‘타락동은 남산 골짜기 곳곳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지금의 퇴계로 근방에서 합쳐져서 건천동(乾川洞) 방면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를 타락(駝酪, 소의 젖이나 그것을 살균하여 만든 음료로 보통 우유를 말함)에 빗대서 붙여진 동명이다. 옛날에 우유는 손님을 위한 접대용이나 왕실에나 진상하던 귀한 음식이었기에 남산계곡의 물을 곧잘 우유에 비유하였다.

남산골은 남산동이라고도 불렀는데 남산동1~3가부터 회현동2~3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 남산 북쪽 기슭에 있으므로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예부터 가난한 선비와 청렴한 관원들이 살았는데, 조선후기왕의잠행(潛行, 왕이 비밀리에 나들이하던 일)으로 종종 남산골 선비촌을 다녀오는 일들이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남산골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멀리 경복궁에까지 들릴 정도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옛날부터 이 일대에는 많은 서생들이 모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제공: 중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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