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 김 재 원 중구 정신보건센터장
특별칼럼 - 김 재 원 중구 정신보건센터장
  • 김은하기자
  • 승인 2007.02.28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속 정신분열병 (II)

존 내쉬는 균형 이론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시대에 MIT 국방연구소에 스카우트되어 암호를 해독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이 시기에 즈음하여 그는 정신분열병의 활성기(active phase)에 접어든다.
이렇게 첩보 활동에 종사하게 되면서(아니, 첩보 활동에 종사한다는 망상이 생기면서) 그는 첩보원으로서 흔히 가지기 쉬운 ‘누가 나를 쫓아다니고 미행하는 것 같다’는 류의 피해의식(persecutory idea)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생각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확장되어 체계화된 피해망상(persecutory delusion)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화는 존 내쉬가 불안해하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지 않나 창문 밖을 계속 살피는 모습과 함께 근사한 추격 액션 장면을 선보이면서 피해의식이 피해망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 독립적으로 따로 놓고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주인공의 ‘환각(으로 밝혀지는 세 인물)'에 대한 것이다. 룸메이트인 찰스 허만과 그의 어린 여자조카 마샤, 그리고 정부비밀요원인 윌리엄 파처, 이렇게 세 명이 환각의 핵심을 이룬다. 몇 번의 암시(존 내쉬가 뒤돌아보니 룸메이트가 갑자기 사라지고 없거나, 윌리엄 파처가 어둠 속으로 홀연히 증발해 버리는 장면 등)가 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듯 보이며, 이 인물들이 존 내쉬에게만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단히 충격을 받는 듯하다.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해 정신과 의사들에게 하는 질문 중 반 이상은 이 ‘환각'에 대한 질문이다. 명쾌하게 답을 드리자면, 이러한 환각이 정신분열병 환자들이 갖는 주증상이라는 점에서는 맞는 묘사이지만, 정신분열병 환자들 대부분이 주로 경험하는 환각증상은 ‘환시(visual hallucination)’가 아닌 ‘환각(auditory hallucination)’이라는 점에서는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존 내쉬가 군중 한가운데에서 환각에 반응하는 모습을 롱샷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리얼리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탁월한 묘사이며, 실제 정신병동에서 자주 접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8길 22-4, 10층 1001호(명동2가, 대한빌딩)
  • 대표전화 : 02-773-4114
  • 팩스 : 02-774-9628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봉주
  • 명칭 : 서울중구신문명동뉴스
  • 제호 : 중구신문
  • 등록번호 : 다 02713
  • 등록일 : 1993-02-25
  • 발행일 : 1993-02-25
  • 발행인 : 변봉주
  • 편집인 : 변봉주
  • 인터넷신문 명칭 : 중구신문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52247
  • 등록일 : 2019-04-03
  • 발행인 : 변봉주
  • 편집인 : 변봉주
  • 중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중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7734114@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