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문화재 탐방 ① - 국가지정문화재
중구 문화재 탐방 ① - 국가지정문화재
  • 유인숙기자
  • 승인 200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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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문화예술 중심지 중구

국보·사적·기념물 등 다양한 문화유산 보유

 

 

 속하게 발전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과거의 지역적 특성과 주체성을 일깨워주고 풍요로운 미래의 길을 밝혀주는 주요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지역 곳곳에 조상들의 숨결이 담겨있는 문화유산을 찾고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조상과 자손을 잇는 중요한 역할이다.

과거 한국사회 변화를 이끌었던 중심지로 오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며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도시, 중구의 문화재 탐방을 떠나보자.

                                                     -편집자주-

 지난 1394년 한양에 도읍을 정한 이래 600여년의 오랜 역사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중구는 우리나라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재와 유적을 보유하고 있어 ‘문화재의 보고’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중구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을 비롯해 사적 10개 등 11개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장충공원 내에 위치한 장충단비를 비롯한 유형문화재 8개 기념물 5개 민속자료 6개 등 20여개의 서울시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1호인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을 비롯해 7개의 등록문화재 등 총 39개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위의 문화재는 모두 부동산문화재(不動産文化財)이며 관내 많은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동산문화재(動産文化財)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토박이회 중구지회를 주축으로 중구에서 보존하고 있는 동산문화재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숭례문(崇禮門)

 

숭례문숭례문은 조선시대 한성 도성의 정문으로 4대문 가운데 남쪽에 위치하므로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태조7년(1398)에 처음 건립된 후 세종 30년(1448) 크게 고쳐 지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보물에서 국보 제1호로 지정됐다. 숭례문이 세로로 쓰여있는 것은 숭례(崇禮)의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여 경복궁을 마주 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899년(광무3년) 서울시내 전차 노선공사로 주변 성곽이 철거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도시계획으로 인해 주변이 훼손되어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도로 한 가운데 섬처럼 고립되어 왔다. 이에 서울시는 숭례문 주변을 잔디와 소나무를 식재하고 지난 7월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또한 숭례문 광장 개방과 함께 숭례문 앞에서는 조선시대 파수의식을 재현하고 있는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30분마다 파수의식을 볼 수 있으며 주말에는 서울문화유산해설사가 배치돼 숭례문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다.

지정번호: 국보 제1호 / 소재지: 중구 남대문로4가 29번지 / 소유: 국유

 

선조들의 희생이 담겨있는 서울성곽(城郭)

 

서울 성곽은 4대문과 4소문을 잇는 서울의 방위시설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서울을 옮긴 후 전쟁 때에 대비하고, 평시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도적 방지를 위해 처음 쌓았다. 

서울 성곽 중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창의문 뿐이며 성벽은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 일대에 남아 있다.

중구 광희동에 위치한 광희문은 속칭 수구문이라고도 하며, 조선 태조 5년 (1396)에 건립한 서울 성곽의 8문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신당2동과 장충동에 걸쳐진 서울성곽 일대가 노후 휀스 및 불법쓰레기 투기 등으로 성벽 미관을 저해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책로가 없어 인근 지역주민들이 불만을 호소해 중구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두달여간의 공사를 거쳐 서울성곽 녹지조성사업을 완공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지정번호: 사적 제10호 / 소재지: 중구 장충동2가 / 소유: 국유 

 

고종황제의 한이 서린 궁궐 덕수궁(德壽宮)


덕수궁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는데 1593년 10월 의주의 피난길에서 환도한 선조를 임진왜란으로 불탄 왕궁대신 이곳에 들게하고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광해군이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덕수궁에는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과 정광헌 등이 남아 있으며 독특하게 전통 목재 건물과 서양식 건축물을 함께 볼 수 있다. 현재 석조전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서 있는데 동관도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정번호: 사적 제124호 / 소재지: 중구 정동 5-1 / 소유: 국유


조선시대 제천단(祭天壇) 원구단(園丘壇)


원구단원구단은 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옛 남별궁 터에 원단(窩壇)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이다.

1913년 원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다음해 조선호텔이 들어서면서 축소되었으며,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단,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경내에 남아 있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3층 담장을 쌓고, 그 위에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황금색 지붕을 세워 놓았으며, 그 옆에 하늘과 땅의 여러 신위들을 모신 3층 팔각지붕의 황궁우를 건설했다.

지정번호: 사적 제157호 / 소재지: 중구 소공동 87번지 /  소유: 국유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 약현성당


약현성당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으로 1891년에 착공, 이듬해 1892년에 준공되었다. 성당의 명칭인 약현(藥峴)이란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인데, 옛날 이곳에 약초밭이 많았으므로 ‘약초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벽돌로 건축되었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라는 점과 벽돌조의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 건축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정번호: 사적 제252호 / 소재지: 중구 중림동 149번지 / 소유: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구 러시아공사관조선 고종 27년(1890)에 건축된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설계자는 러시아인 토목기사 사바틴(A.J. Scredin sabatine)으로 추측된다. 본관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3층 규모의 탑만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1896년 2월 1일 고종이 세자(순종)와 함께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했던 곳으로 다음 해 2월 20일 경운궁(慶雲宮)으로 환궁할 때까지 거처했다. 국제 정세에 휩쓸려 자주 정변을 겪어야 했던 다난한 시대의 증인이 되는 건물이다. 지하에는 밀실(密室)과 비밀통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러시아공사관은 광복 후 소련영사관으로 사용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탑 부분과 지하층 일부만 남아 있다가 1973년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지정번호 : 사적 제253호 / 소재지: 중구 정동 15번지 / 소유: 국유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정동교회


정동교회기독교 대한감리회 중구 용산지방 소속 교회 건물이다. 정동교회의 전신은 베델예배당(Bethel Chapel)으로서 고종24년(1887) 10월 미국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Appenzeller, H. G.)에 의해 세워졌다.

베델예배당은 고종 32년(1895) 9월에 착공, 이듬해 12월 26일 헌당식(獻堂式)을 가졌다. 붉은 벽돌로 된 새로운 예배당은 최초의 현대식 개신교회 건물이다. 6·25전쟁 때 전화(戰禍)를 입어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1953년 말 중수했으며, 1987년 화재로 건물 내부 일부가 소실된 것을 보수했다. 현재 교회 구내에는 교회의 성장과 함께 신관을 증축함으로써 신·구건물이 병존하고 있다.

정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로서 독립협회운동·여성해방운동·인권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지정번호: 사적 제256호 / 소재지: 중구 정동 34번지 / 소유: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


한국 천주교의 상징 명동성당


명동성당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主敎座) 성당으로서 고종 29년(1892)에 착공, 광무 2년(1898)에 준공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교회당이며, 국내 유일의 순수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이 곳은 정조 8년(1784)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직후부터 천주교 신도들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또한 이 일대는 1830년대 이후 선교사들이 은거하며 비밀리에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의 중심지였다.

고종 19년(1882) 한미수호조약(韓美修好條約)이 체결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당시 교구장이던 블랑(Blanc)주교가 종현본당을 설립 1887년부터 터닦이에 들어가는 등 성당건립을 추진했다. 1892년 5월 8일 정초식을 가졌으며, 1898년 5월 29일 준공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종현본당의 이름을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현재 명동성당은 카톨릭회관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을 거느리고 있으며, 12,000평이 넘는 대지에 총 건평이 4천평이 넘는 규모이다. 오늘날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의 상징이자 구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정번호 : 사적 제258호 / 소재지: 중구 명동2가 1번지 / 소유: 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


금융과 화폐의 본거지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본관일본의 건축가인 다쯔노깅꼬(辰野金吾)의 설계로 1907년 11월 착공되어 1912년 1월에 완공되었다. 준공 후 1911년 8월 설립된 조선은행 본점으로 사용했다. 광복 후에도 잠시 조선은행의 명칭으로 사용되다가, 1950년 6월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설립됨에 따라 이 때부터 한국은행 본점으로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쟁 때 내부가 불타 버린 것을 1958년 1월 복구하고, 1989년 5월에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한국은행은 이 건물 1층을 2000년 12월까지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2001년 6월 내부 개조공사를 완료하고 화폐금융박물관을 개관하여 한국은행의 주요 기능 및 역사, 그리고 국내외 화폐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정번호: 사적 제280호 / 소재지: 중구 남대문로3가 110번지 / 소유: 한국은행


한국 최고(最古)의 철도역 구 서울역사


구 서울역사1922년 6월에 착공되어 1925년 9월에 완공되었다. 총 면적 26만9,095㎡의 대지 한쪽에 약 17,200㎡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다. 설계자는 독일인 C.K. 라란데이며 서양에서 18세기 이래 유행되어 온 절충주의 양식을 모방했다. 건물의 평면은 중앙부에 큰 홀을 두고 그 앞쪽에 2층 높이의 큰 현판을 외부로 돌출시켜 입구로 삼았으며, 홀 좌우에 2층 높이의 곁채를 연결하고 여기에 2층 건물을 덧붙였다. 현재 건물의 외형은 신축 당시에 만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신 서울역사가 준공되면서 철도청은 구 서울역사를 예술영화 전용관을 비롯한 전시회장, 컨벤션센터 등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역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역사이므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지정번호: 사적 제284호 / 소재지: 중구 봉래동2가 122번지 / 소유: 철도청


조선시대 주요 건축자료 서울청계천유적

(광통교·수표교·오간수문지)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가 지난 3월 23일 지정한 것으로 서울시가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일대 조선시대 문화유적들인 광통교지와 수표교지, 오간수문지의 세 곳이다. 이들 청계천 유적은 조선시대 토목기술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교량의 설치나 그 변천과정을 통해 도시 기능의 확대와 도성 관리체계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판단 하에 지정한 것이다.

지정번호: 사적 제461호 / 소재지: 중구 남대문로1가 9번지 / 소유: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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